백제국 승려 관록_일본삼대실록

백제국 승려 관록_일본삼대실록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   권 5 淸和天皇   >   貞觀3년 6월 16일(0861년 06월 16일(음))  >  百濟僧 觀勒의 曆術 이래로 日本의 曆. 渤海國大使 鳥孝愼이 長慶宣明曆經을 바침


百濟僧 觀勒의 曆術 이래로 日本의 曆. 渤海國大使 鳥孝愼이 長慶宣明曆經을 바침 ( 861년 06월16일(음) )


(6월) 16일 己未 長慶宣明曆經註 001을 처음으로 반포하여 시행하였다. 이에 앞서 陰陽頭 從5位下 兼 行曆博士 大春日朝臣·眞野麻呂가, “삼가 살피건대 豊御食炊屋姬(推古)天皇 10년(602) 10월에 백제국 승려 觀勒이 처음으로 曆術을 바쳤으나註 002 세상에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高天原廣野姬(持統)天皇 4년(690) 12월에 칙명을 내려 처음으로 元嘉曆註 003을 사용하였으며, 다음에는 儀鳳曆註 004을 사용하였습니다. 高野姬(稱德)天皇 天平寶字 7년(763) 8월에 儀鳳曆을 그만 두고 開元大衍曆註 005을 사용하였는데, 그 후 寶龜 11년(780)에 遣唐使 錄事 故 從5位下 行內藥正 羽栗臣翼이 寶應五紀曆經註 006을 바치면서 ‘大唐은 이제 大衍曆을 그만 두고 오직 이 經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天應 원년(781)에 勅令이 있어 이 經에 의거하여 曆日을 만들게 하였는데, 이를 익히거나 배우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 업을 전할 수 없어 오히려 大衍曆經을 사용한 지 이미 100년이 되었습니다. 眞野麻呂가 지난 齊衡 3년(856)에 저 五紀曆을 쓸 것을 청하니, 조정에서 ‘국가가 大衍曆經에 근거하여 曆日을 만든 것이 오래되었고, 聖人이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의리로 보아 둘 다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땅히 잠시 동안이라도 서로 겸용하여 한쪽 것만 사용하지 않도록 합시다’라고 의논하였습니다. 貞觀 원년(859)에 渤海國 大使 烏孝愼이 새로이 長慶宣明曆經을 바치며 ‘이는 大唐에서 새로이 쓰는 曆經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眞野麻呂가 시험삼아 살펴보았는데, 이치가 분명하였습니다. 이에 저 새로운 曆을 大衍·五紀 등 두 曆經과 비교하고, 또 天文을 살피며 時候를 참작하니, 두 曆經이 점차 치밀하지 못하게 되며 朔日과 節氣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 大唐 開成 4년(839)과 大中 12년(858) 등의 曆經을 교감하니 저 新曆이 다시 서로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曆書에서 말하기를 ‘陰陽의 운동은 움직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므로 曆과 어그러지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大唐은 開元(713~741) 이래로 세 번이나 曆術을 고쳤습니다. 本朝에서는 天平(729~748) 이후로 오히려 한 가지 經만을 사용하면서도 조용히 사물의 이치만을 말하고 있으니, 진실로 그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청하건대 옛 曆法을 그만 두고 새로운 曆法을 사용하여 天運을 공경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천황이) 조를 내려 이를 따랐다.


(六月) 十六日己未 始頒行長慶宣明曆經 先是 陰陽頭從五位下兼行曆博士大春日朝臣眞野麻呂奏言 謹檢 豊御食炊屋姬天皇十年十月 百濟國僧觀勒始貢曆術 而未行於世 高天原廣野姬天皇四年十二月 有勅始用元嘉曆 次用儀鳳曆 高野姬天皇天平寶字七年八月 停儀鳳曆 用開元大衍曆 厥後 寶龜十一年 遣唐使錄事故從五位下行內藥正羽栗臣翼貢寶應五紀曆經云 大唐今停大衍曆 唯用此經 天應元年 有勅令據彼經造曆日 無人習學 不得傳業 猶用大衍曆經 已及百年 眞野麻呂 去齊衡三年 申請用彼五紀曆 朝庭議云 國家據大衍曆經 造曆日尙矣 去聖已遠 義貴兩存 宜暫相兼不得偏用 貞觀元年 渤海國大使烏孝愼新貢長慶宣明曆經云 是大唐新用經也 眞野麻呂試加覆勘 理當固然 仍以彼新曆 比校大衍五紀等兩經 且察天文 且參時候 兩經之術 漸以麤疎 令朔節氣旣有差 又勘大唐開成四年 大中十二年等曆 不復與彼新曆相違 曆議曰 陰陽之運 隨動而差 差而不已 遂與曆錯者 方今大唐開元以來 三改曆術 本朝天平以降 猶用一經 靜言事理 實不可然 請停舊用新 欽若天步 詔從之


註 001

長慶宣明曆經 : 唐 穆宗 長慶 2년(822) 徐昻이 만든 曆으로서, 憲宗 元和 2년(807)에 시행한 觀象曆이 거칠고 간략하므로 이를 대신하여 사용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持統天皇 貞觀 4년부터 江戶時代 貞享 원년까지 800여 년 동안 사용하였다.

註 002

豊御食炘屋姬(推古)天皇 10년(602) 10월 ~ 曆術을 바쳤으나 : 『日本書紀』 권22, 推古天皇 10년 10월조에 曆法의 전래 사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때의 曆은 宋의 元嘉曆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註 003

元嘉曆 : 宋 文帝 元嘉 20년(443)에 何承天 등이 만들어 元嘉 22년에 널리 사용된 曆法으로서, 『周書』 百濟傳에 보이듯이 백제에서도 널리 사용되었고 觀勒을 통해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推古天皇 12년(604)에 이미 元嘉曆을 사용했다는 것이 된다.

註 004

儀鳳曆 : 唐 高宗 때에 李淳風이 甲子元曆을 바치고 麟德 2년에 반포하여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를 麟德曆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儀鳳曆이란 이름으로 일시 시행하였다. 이는 隋 劉焯의 皇極曆을 계승하여 수정한 것이다.

註 005

開元大衍曆 : 唐 玄宗 開元 17년(729)에 반포 시행된 曆이다. 이 曆法은 開元 9년 이래로 麟德曆이 日食을 정확하게 예보하지 못하게 되자, 僧 一行이 玄宗의 칙명을 받들어 新曆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一行이 그 시행을 보지 못하고 죽자 特進 張說과 曆官 陳玄景이 조칙을 받아 一行의 曆法을 바탕으로 曆術 7篇, 略例 1篇, 曆議 10篇을 완성하여 開元 17년에 반포 시행하였다. 日行盈縮의 법에 있어서 劉焯의 법을 보완하고, 太陽運動의 不等性에 의한 中心差를 명확히 한 唐代의 대표적인 曆法이다.

註 006

寶應五紀曆經 : 唐 代宗 寶應 원년(762)에 大衍曆이 月食을 정확하게 예보하지 못하자, 이를 대신하여 郭獻之가 만들어 시행한 曆法이다. 麟德曆과 大衍曆의 두 曆法을 절충하였는데, 용어는 大衍曆에서 취하고 定數는 麟德曆과 같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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